조선 말기에 성행한 가짜 족보(族譜)?
현재 전하고 있는 16~17세기의 호적을 검토해 보면, 그 당시에는 노비가 전체 인구의 30~40%, 평민이 40~50%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까지만 해도 족보는 양반의 전유물로 여기는 풍조라 백성의 대부분을 자치하는 이들에게는 족보는 먼 이야기였죠~ 그래서 3년마다 국가의 명령으로 정리되었던 호적 신고 시 족보가 없었던 평민이나 노비들은 사조(四祖)의 이름을 댈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참고로 사조(四祖)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네 조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다 18세기에 들어서자 공공단체나 사찰에만 비치되었던 인쇄시설을 개인도 소지하게 되었고 이 계기로 족보를 비롯한 책자의 발간이 전 시대보다 비교적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유리한 평민들..
오버부 지식탐방/우리역사정보
2011. 11. 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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