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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쾅 쿵쾅~” 빠른 심장소리, 주르륵…… 이마에서 턱까지 흐르는 땀,
“흡~후~흡~후~” 내 코와 입을 오가는 호흡소리, “다다 닥~” 빠르게 움직이는 내 두 발……

그리고 오른손에 느껴지는 온 기…… 내 시선이 멈춰선 그곳에 그가 나와 함께 달리고 있다.

오늘은 2010년 나이키 10K 마라톤을 하는 날……

그와 함께 마라톤 마지막 코너를 돌면서 두 손을 잡고 남은 내 힘을 심장과 두발에 모아서 골인 지점까지 달렸다.

그 순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마치 흑백 사진 속에 나와 그만이 칼라사진으로 보여졌다.

우리의 기록 59분 54초!! 마라톤을 뛴 커플 중에서 한번도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결승점에 들어온 커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고 들어 온 커플은 없을 것 같다.

호흡을 가다듬고 감격의 포옹을 하고 눈을 마주치니 이보다 감동스럽고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생각이 내 주변의 공기처럼 꽉 차버렸다.

이 세상에서 평생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내 옆을, 내 발걸음을, 내 삶을 지켜 봐 주고 내 호흡을 맞춰 가주며 뛰어줄 사람이 마치 마법처럼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 홀로 벤츠에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달리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내 뛰는 속도를 맞춰주고 내가 가는 방향과 길에 따라 내 옆을 그림자처럼 뛰어준 사람…… 그리고 마지막에 내 손을 잡고 골인 지점까지 함께 해준 그 사람……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꾹꾹 눌러보지만 창피하게 뺨 위로 흘러내려 버렸다.
그가 오길래 빠르게 훔치면서~ 빙그레 웃어본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걸 다 담을 수 없지만 내 마음을 이 한마디로 전해본다.

“고마워요~”

그가 메아리처럼 대답해주었다.

“고마워요.”

이렇게 우린 짧게 서로의 마음을 전해본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31살 새롭게 선사해준 그 사람이 나는 참 고맙다. 그리고 그를 운명처럼 만나게 해준 이공간 이곳…… 내가 살아온 이곳이 참 고맙다.

서울…… 은평구…… 대조동……

 

2009년 추운 겨울 어느 날

동호회 활동에 지치지 않는 내가 오늘따라 피곤해서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바에서 나왔다. (나는 스윙댄스 동호회 활동을 한지 2년이 넘었다. 춤을 너무 재미 있어서 일주일에 하루 이틀을 빼고는 춤추기 위해서 바를 다녔다. 술 파는 곳이 아닌 춤추는 마루가 깔린 공간)

그런데 오늘 처음 함께 춘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땐 무슨 용기가 났을까 2년이 넘도록 한번도 리더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닉네임을 물어보거나 바 아닌 곳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리더(스윙을 추는 남자를 칭하는 말)와 대화를 해본 적도 없는데…… 그것도 그날 처음 춤을 춘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뛰어가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느 동호회세요??“

알고 보니 우리 동호회였다. 내가 너무 춤을 열심히 춘 탓에 내가 들어온 1년 터울에 동호회 회원은 잘 몰랐다. 다들 동호회 활동하면서 연애도하고 그러는데 나는 그냥 춤밖에 몰라서 연애하고는 먼 사람이었다.

그렇게 함께 지하철을 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으로 갔다.

그 사람이 어느 역에서 내리냐고 물어보는데 마치 짜 여진 극본마냥

“연신내 역이요!!” 이렇게 답하고 나니 그가 “전 불광 역인데” 이렇게 사는 곳부터 물어보니

‘서울 은평구 대조동…… ’ 서로의 주소가 이렇게 일치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우린 닮은 점이 많았다. 1980년 같이해 태어난 동갑내기이며 AB형이고 둘 다 어렸을 때 돼지마냥 살이 쪄서 다이어트에 대한 고민과 애환까지 겪어본 사람이고, 등산이며, 마라톤까지 좋아하는 것까지 닮은 사람들 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출퇴근 하는 회사가 있는 지하철역까지 똑같이 강남 신사 역 이였다. 거기다가 울 친 오빠와의 나이 차이~ 그리고 그와 그의 형님의 나이차이까지 똑같다는 사실……

 

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그 순간 내 운명이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과 설레 임으로 행복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갔다.

그렇게 서로의 닮은 점에 신기해하면서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우린 친구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미래를 함께 하는 인연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난 1980년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에서 1986년까지 살았다.

그리고 사정상 형평이 안되어서 역촌동 그리고 경기도까지 흘러 들어가 다시 대조동으로 이사온건 2009년 5월이었다. 내가 사는 이 대조동이 좋은 이유는 중고등학교도 근처 학교를 꾸준히 다녔고 큰 이모 둘째 막내 삼촌도 계시고…… 나에게 너무 익숙한 내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살던 전세 집이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울 가족의 터전을 찾다가 너무나도 익숙한 대조동으로 다시 옮긴 것이었다. 이게 나의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해준 연결고리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신기하게도 나의 그 사람은 1986년 대조동에 이사 와서 쭉 이곳에 살았다. 마치 마라톤의 바톤 터치한듯한 시간의 터울이었다. 그리고 쭉 내가 돌아오는 2009년 그리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부모님이 열심히 세탁소를 한 곳에서 운영하면서 살아 오신 것이었다. 처음 세탁소에 들어섰을 때 가게 앞 세탁이라는 간판이 참 구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처음 1986년에 만들어진 세탁 간판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31살이 되도록 나의 인연을 못 만났기 때문에 결혼은 생각지도 못했고 상상조차 못하고 항상 엄마한테 ‘나 결혼 안 해~ 엄마랑 오래오래 살 꺼야!!’ 이렇게 말하면서 결혼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정말 난 결혼을 못할 줄 알았다. 오래 전 남자한테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를 만나서 나의 운명은 꿈처럼 한 순간에 바뀌었다. 그를 만나서 결혼준비를 하고 웨딩 촬영까지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다.

 

 

우린 출퇴근을 매일 같이하면서 더욱 사랑을 키워나갔다.
남들이 일주일에 몇 번밖에 못하는 데이트를 우린 매일같이 했다. 집이 같고~ 회사가 같고~ 취미활동이 같았기 때문에 함께 할 시간들이 다른 커플들 보다 많았다.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이렇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함께 출근하기 위해서 불광 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신사 역에서 내린다.

서로 열심히 일을 하고 다시 지하철역에서 만나서~ 춤을 추러 가거나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운동 겸~ 불광 초등학교에 산책 가거나 20여분 걸어가야 있는 불광 천에 간다. 가끔 보는 분수 쇼도 보기도 하고 함께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 불광천이 똥물 이었다는 추억도 이야기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우린 동시대를 함께 살아왔고 같은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무엇을 이야기 하든 막힘이 없고 마치 30년을 함께 살아온 사람 마냥 추억을 공유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1980년에 태어나서 같은 문화의 변화를 함께 겪으면서 살아온 것도 신기한데 우린 동네의 추억 또한 같이 공유할 수 있어서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다.

 

가끔 난 그런 상상을 해본다.

영화처럼 과거 어린 시절 서울시 은평구 대조동 어느 한 골목에서 한 소녀와 한 소년이 운명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

그리고 운명처럼 어른이 된 나와 그가 다시 그곳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서로 마주하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아마 어린 시절 한번쯤 대조동 골목…… 불광 시장…… 어딘가에서 어린 소년을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다른 곳에서 일했다면 아마도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혼자 외롭게 지냈을 생각을 하니까 암담한 생각이 먼저 든다. 반쪽 짜리 인생……

 

아직은 부족한 반쪽이지만 그와 함께 할 시간 속에서 나는 반쪽이 아닌 하나가 되어서 내 인생의 행복을 꾸려 나가려 한다.

 

운명처럼 시작된 서울 은평구 대조동…… 이곳에서 말이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주소 명 또한 운명처럼 17-17이라는 사실에 서로 놀랐다. 모든 게 잘 짜인 퍼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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