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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밭 사이에 경계가 없어 힘센 자들이 날로 약한 자의 토지를 잠식하기에, 김구가 지역민들의 고충을 듣고 돌을 모아 담을 쌓고 경계선을 구분 지으니, 지역민들이 편하였다.”

‘탐라지’에 나온 내용으로 제주 섬에 처음 돌을 이용 밭의 경계를 표시하려고 밭 담을 쌓았다는 문헌 기록입니다.

 


참고로 탐라지는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전라도 제주목•정의현(旌義縣)•대정현(大靜縣)(지금의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읍지로 내용면에서 제주의 자연환경으로부터 인물•시문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특징을 매우 정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여 17세기 중엽의 제주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문헌입니다.

김구는 고려시대인 1234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사람이니 이 기록대로라면 제주 밭담은 1234년부터 형성된 셈이죠~

그러나 실제로 제주의 밭 담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쌓아져 왔습니다. 돌담에 경계선의 의미가 하나 더 얹히게 된 것은 1234년부터일 수도 있겠지만, 밭에서 골라낸 돌들이 자연스럽게 담을 이루고, 흙과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바람을 걸러낼 돌담을 쌓아 두르는 일은 농경문화와 더불어 시작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농사를 짓기 위해선 경계는 둘째 치고, 씨앗을 하나라도 더 심기 위해 밭의 돌들을 골라내야 했고, 그 씨앗을 덮은 흙을 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선 바람을 막아야 했습니다.

밭의 돌담은 바람으로부터 흙과 씨앗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밭담 역시 직선이 아닌 곡선이 되게 쌓았고, 특히 바람이 많은 해안지역일수록 높게 쌓아 흙이 바람에 날라지 않도록 했습니다.

제주 섬에는 대규모의 농경지가 없습니다. ‘돌랭이’라는 작은 밭들로 조개 어진 채 잇따라 붙어있죠~

바람을 막아내며 생선에서 뼈를 발라내듯 귀한 흙을 추슬러 농사를 지어야 했던 제주 섬의 자연환경이 소규모의 밭 형태를 이루게 했던 것입니다.

밭 돌담 중에는 작은 성곽처럼 특이한 돌담이 있는데요~ ‘잣길’이라 부르는 이 돌담은 사람이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넓이로 쌓아져 밭과 밭을 연결해주는 통로구실을 합니다.

 


다른 지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제주만의 농로인 셈인데, 남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제주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밭과 밭 사이에 있거나, 길이 없는 밭의 경작지가에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위해 이 ‘잣길’을 길 삼아 다니라고, 하는 뜻이 담긴 유용하고 따뜻한 돌담길인 것이죠~

아직도 제주도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돌담에 이러한 여러 의미가 있다니 담에 제주도에 여행할 땐 좀더 관심 있게 봐야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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