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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살인 또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방치하여 결국 죽게 만들었거나, 변사자가 발생했거나, 옥에 갇혔거나 유배 중인 죄인이 사망하였을 경우에는 일단 해당 고을의 행정담당관이 현장에 나가서 시체를 검증하고, 사인을 밝혀 검안서(檢案書)를 작성하였습니다.

이를 당시에는 검험(檢驗)이라 했는데, 지금의 검시(檢屍)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한 것이 아니라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寃錄)」의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여 시행되었습니다.

억울함을 없게 한다는 의미의 <무원록(無寃錄)>은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송나라의 형사사건 지침서들을 바탕으로 1308년에 편찬한 법의학서입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이용되었습니다. 세종은 제도와 법률을 정비하는 작업의 하나로서 최치운에게 주해(註解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다)하도록 하여 1440년(세종 22년)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간행하고 실제 검시(檢屍) 등에 이용하게 하였습니다.

이 책은 이후 18세기 <증수무원록>이 간행될 때까지 조선시대 검시의 표준 서적으로 기능했지만 원서 자체에 이해하기 힘들거나,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 영조 때 신주무원록을 토대로 이를 다시 써 1792년(정조 16년) 교서관에서 3권 2책의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寃錄諺解)>가 간행되었으며, 1796년(정조 20년) <증수무원록대전>이 간행되었습니다.

 


그러한 무원록을 살펴보면, 신고 접수 후 즉시 출동하여 현장을 보존하고, 고을 수령이나 사또가 직접 검험을 지휘하며, 주변상황과 시신의 상태를 일일이 기록하고 그려 검안서와 시형도(屍型圖)로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살인사건 현장에 즉시 출동한 경찰이 폴리스 라인의 설치하고 주변을 통제하는 등 외부인의 출입과 증거 인멸을 방지하고, 검사의 지시로 검시관이 입회하여 시체의 사인(死因) 분석 및 단서를 수집하여 현장을 사진으로 찍고, 수사기록을 남겨 수사 기간이 오래되거나 수사 담당자가 바뀌어도 소중한 자료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점과 유사합니다.


그 외에도 접대와 수사 지연, 책임의 전가 등을 경고하는 규정도 보이는데, 이는 현재 사건과 관련된 검찰과 경찰에도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그리고 핵심적으로 무원록에는 사인 규명 방법을 다루고 있지만 그때에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도구가 없었기에 주로 소금, 식초, 밥, 술 등을 이용하였습니다.

또한 현대와는 달리 시신을 해부하지 않고, 겉만 보고 사망 원인을 찾으려 하였는데, 이는 '자기의 신체는 부모님으로부터 이어 받은 것이니, 감히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시작이니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가르치는 유교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신의 외양의 형태에 따라 사인을 17가지로 나누고, 이를 다시 자살과 타살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죽기 전 상처와 죽은 후 상처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범인이 독에 의한 중독사로 피살자를 죽였는데, 수사관들이 칼에 의한 죽음이라고 판단하여 수사망을 흐리게 하려는 목적으로 죽은 피살자의 몸을 칼로 찔러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를 판단하기 위해 '살아있을 때 생긴 상처에는 상처 주위에 피가 흐르고 피부가 벌어지지만, 죽은 후 생긴 상처에서는 피가 나지 않는다'라고 기록한 구절입니다.

이는 현대 법의학에서도 살아있을 때에 칼에 찔렸다면 근육의 탄력 때문에 상처부위가 벌어지고 혈관의 압력으로 인해 피가 밖으로 배어 나오지만, 죽은 뒤에는 근육의 탄력이나 혈관의 압력도 모두 정지된 상태라 그때 칼에 찔린 상처는 벌어지거나 피도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점과 동일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독극물에 은비녀를 사용하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은(銀)이 우리 인체에 해로운 염소, 황, 오존 등과 반응하여 변색되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오늘날 독극물 검사를 할 때에도 은을 사용합니다. 이외에도 무원록에는 여러 가지 검시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무원록이 오늘날과 같은 과학적 법의학 체계는 아니지만 조상들은 경험과 지식으로 사인을 밝히고, 범인을 색출할 수 있게 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이용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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