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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 선생은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시각 장애인 사회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존경의 상징이며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는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온 지 480여 년 만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 '훈맹정음' 을 발표한, '시각 장애인의 세종 대왕'으로 존경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호는 송암(松庵)이며 경기도 강화 출신입니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교사로 있다가 1913년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서울盲學校의 전신) 교사로 취임하여, 이 때부터 맹인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 점자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오다 1920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하였고 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 불리는 한글 점자를 완성하게 됩니다.
 
당시 일제의 검인정교과서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 한글 점자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을 점자 출판하였으며, 이에 따라 맹인들에게도 민족의식이 더욱 고취되었죠~

1935년 5월에 개최된 부면협의원(府面協議員)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한글점자투표가 가능하게 되어 맹인들의 사회참여 통로가 확장되기도 했습니다.

한글 점자가 완성되는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송암은 프랑스인 루이 브라이유가 창안한 외국 점자 6점 점자와 이전에 있었던 8점 점자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시각 장애인이 한 번에 촉독(觸讀)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수는 6점이라는 것을 밝혀 낸 뒤,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을 양력으로 환산, 11월 4일에 맞춰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여러분은 비록 눈은 잃었으나 우리말과 우리글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라며 민족 의식을 심어 주고, "눈은 비록 어두우나 마음까지 우울해서는 안 된다. 몸은 비록 모자라도 명랑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마음조차 암흑이 될 테니 배워야 한다."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점역 작업을 위해 하루도 쉴 날이 없던 송암은 점차 시력을 잃어 실명을 하고,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다 1963년 8월, 76세의 일기로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을 사랑했던 사람답게 "점자책은 쌓지 말고 꽂아 두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점자책을 쌓아 두면 돌출부가 납작해져 촉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시각 장애인 교육에 평생을 바치고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걱정한 그의 고귀한 뜻을 기려 인천 광역시는 시각 장애인 전용 복지관과 송암 기념관을 건립해 그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 중에 시각이 전체 감각의 80퍼센트를 넘게 차지한다고 합니다.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망각하며 살고 있는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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